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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원더 이야기
많은 뮤지션들의 우상 스티비원더는 1950년 5월13일 생으로 본명은 스티블랜드 하더웨이 모리스이다. 스티비원더는 유아기에 인큐베이터 산소 과도 공금으로 인하여 망막이 손상되고 실명하게 되어 많은 장애인분들의 큰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는 청소년기에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여 지금까지도 모타운레코드와의 계약을 유지하며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첫음반을 발표할 당시의 나이는 12세라고 한다.
이후에도 1억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하고 1위곡을 무려 9개의 빌보드 차트에 올린 역사가 있다. 그의 시각 장애가 되려 청각을 발달시켰다는 의문을 품게 할만큼 뛰어난 재능이 있는데 피아노, 하모니카, 오르간, 베이스, 콩가, 드럼등 다양한 악기를 전문 연주자만큼이나 연주할만큼 시각장애가 음악하는데에는 큰 의미가 없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현재 그는 68세의 나이로도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중들뿐만 아니라 많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력이 있고 특히나 실용음악과 보컬전공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겐 베스트로 꼽히는 카피 대상 1호이다.
Latley, Ribbon in the sky와 같은 곡의 경우에는 성시경,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리메이크 앨범에도 포함되어 있을만큼 국내 뮤지션에게도 영향력이 많다.
김건모 노래의 My son에서는 스티비원더 처럼 노래하고싶어요 라는 가사가 있는것 처럼 김건모가 스티비원더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기기도 하였다.
스티비원더의 자녀사랑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루머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보고싶어 개안수술을 받았다가 실패했다는 잘못된 근거의 루머가 대표적이다. 스티비원더는 수술에 관해 의사들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본인과 맞지 않아서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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